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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만원권 발행, 인플레 자극 않도록 유의해야 |
오늘부터 5만원권 새 지폐가 유통된다. 1973년 1만원권이 발행된 지 36년 만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 규모가 80배가량 커진 점을 고려하면 고액권의 발행은 당연한 일이다. 고액권이 없는 까닭에 기업과 개인은 10만원짜리 수표 발행에 연간 2800억원의 비용을 써왔으며, 이에 따른 인력과 시간 낭비도 적지 않았다. 5만원권이 기존의 10만원짜리 수표와 1만원권을 대신함으로써 화폐 유통이 훨씬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5만원권 발행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플레 심리의 확산 가능성이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맞아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발권력을 동원한 통화량 공급만 27조원을 넘어섰다. 정부 재정지출은 대형 국책사업이 시작되는 하반기부터 본격화한다. 과잉 유동성으로 언제 인플레이션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지만 바닥 탈출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통화량 증가는 결국 인플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한때 30달러대까지 하락했던 국제 원유값이 70달러대로 올라서는 등 달러화 약세로 인한 원자재 값 상승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이내로 낮은 수준이지만 서민과 중산층이 느끼는 생활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만원권 발행은 인플레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3만원대 저가형 상품들의 용량을 약간 늘려 5만원짜리 상품으로 둔갑해 출시하거나 각종 서비스 요금의 기본단위가 5만원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소득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씀씀이의 기본단위가 5만원으로 올라가 버린다면 서민들의 생활은 그만큼 쪼들리게 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기 바닥을 확인하는 대로 인플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5만원권이 뇌물이나 로비 자금으로 쓰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편지봉투 하나에 500만원 이상이 거뜬히 들어가니 돈 전달이 쉽고 증거도 남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은 이번 기회를 투명사회 정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5만원권 발행 이후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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