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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된 비정규직 해법 인식 |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열린 민관합동회의에서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용의 유연성인데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학창시절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일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정규직하고 비슷하게 월급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는 말도 했다. 이런 발언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과 철학을 매우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쉽게 정리하면, 첫째는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 유연성 제고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정규직 보호의 핵심을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일자리 유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비정규직 해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대통령의 이런 접근 방식은 매우 우려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전제가 잘못되면 결과물인 ‘종합적 대책’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비정규직법의 핵심 취지는 비정규직 남용 방지를 통한 고용 안정성 확보이다.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어 차별받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것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런 꿈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은 잘못된 고용이라는 것도 잘못된 고정관념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대통령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발언은 정규직 전환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 유연성 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기업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려 850만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부터가 어이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더욱 주목되는 것은, 최근 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갈등 양상으로 끌고가는 일부 흐름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더욱 쉽게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해서 비정규직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우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그릇된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인식으로 종합대책을 마련해 봤자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양극화의 확대와 신빈곤층의 양산,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잠재력까지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은 이미 많은 연구가 진척돼 있다.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 제한, 해고금지제도의 법제화, 실효성 있는 차별시정 제도 도입 등 그동안 노동계와 학계 등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주장들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제도를 손질하는 데 곧바로 착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진실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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