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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또다른 장자연’ 없도록 하려면 |
화려한 조명 뒤 음습한 그늘에선 추악한 범죄가 예사롭게 벌어질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엊그제 <한겨레21> 보도로 전해진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의 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설문에 답한 연기자 상당수가 성상납 또는 접대를 직접 강요받았거나 동료의 피해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욕설·구타 따위 인권 침해나 금품 요구를 받았다는 응답도 많았다. 다수는 부당한 요구를 거절했다가 불이익도 받았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설문에 응한 이들의 피해가 이 정도라면 실제 부패상은 이보다 더 넓고 뿌리 깊을 것이다.
성상납과 접대 강요의 구체적 행태도 장자연씨가 죽음으로 고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구속된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소속 가수에게 방송사 관계자와 기업인, 정치인 등 ‘힘 있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접대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가수는 다른 기획사에서도 성상납 따위 요구를 받았으며, 이를 거절했다가 일거리를 잃은 일도 있다고 한다. 인기를 얻을 기회를 얻으려면 이런저런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연예계의 오랜 현실이라고도 한다.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알면서도 관행이라는 따위 이유로 쉬쉬하며 묻어두고 처벌을 미룬 탓이다. 그동안에도 장자연씨 사건과 비슷한 성상납 의혹이 여럿 있었지만 강요한 자들이 처벌받은 일은 거의 없다. ‘또다른 장자연’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가해자들부터 엄히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근거도 있다. 한예조 설문조사에선 연예인들이 중복해 거론한 가해자가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장자연씨도 자신이 접대했다는 이들을 지목했다.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기획사 대표가 부인한다는 이유 따위로 이를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부당한 요구를 허용하는 잘못된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는, 연예인에게 일방적이고 부당한 의무를 강요하는 불공정 조항이 없는 계약서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상당수는 노예계약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바로잡을 연예인 전속계약서 표준약관이 오늘 발표된다. 약관을 어기는 기획사엔 엄한 제재가 따라야 성상납과 접대 문화를 키워온 연예산업의 후진적인 불투명성을 걷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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