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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07 20:57 수정 : 2009.07.07 20:57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 성도 우루무치에서 그제 벌어진 시위에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 150명 이상이 숨지고 800여명이 다쳤다. 이후 군경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음에도 시위대가 다시 집결하려 하는 등 현지 상황은 사뭇 심각하다. 중국 당국은 신장 다른 지역에서도 시위 움직임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보가 통제된 상황이라 정확한 충돌 경위를 알기 어렵지만,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진 점은 분명하다. 양쪽이 이성을 회복해 더이상의 유혈사태는 막아야 한다. 이런 유혈사태 희생자의 대다수는 애꿎은 민초들이다.

이 지역에서 유혈사태가 되풀이되는 데는 민족주의를 자극해 소요를 일으키려는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분리주의 세력 탓만 하며 강경진압으로 일관하는 중국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광둥성의 한 장난감공장에서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 일어난 다툼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당시 위구르인들이 한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에 자극받은 한족의 공격으로 위구르인 둘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쳤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그 뒤 주검 옆에 사람들이 서 있는 현장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위구르인들의 분노가 커졌다. 위구르인들은 정부가 사망자 수를 줄여 발표했다며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이런 움직임이 이번 유혈참사의 배경이 됐다.

위구르인들이 이렇게 폭발한 것은 차별받고 있다는 강한 피해의식 때문일 것이다. 터키계 무슬림인 위구르족은 한족과 다른 혈통·문화·언어를 갖고 있다. 1944년 동투르키스탄을 세워 잠깐 독립국가를 선포했지만 19세기부터 대체로 중국의 영향권이던 이 지역은 1949년 중국에 병합됐다. 중국 정부는 이후 대규모 식민정책을 펴, 1949년 6%에 그치던 한족을 41%로 늘려놓았다. 이는 한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린하고 삶의 터전과 경제적 권리를 침탈해 간다는 위구르인들의 불만을 키웠다.

결국 이번 위구르 사태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서 비롯했다. 소수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경제적 차별을 줄이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신장이나 티베트의 불안 상황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제 소수민족 정책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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