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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부를 농락하는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 |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삼성사건 1심 재판을 받으면서 ‘양형 참고자료’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주식 헐값 발행으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SDS)의 기존 주주들에게 끼친 손실액 2509억원을 두 회사에 지급할 테니 형량을 낮춰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주식 발행이 회사에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등의 판결이 나오자 삼성 쪽이 이 돈을 다시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사법부 농락을 넘어 재판부를 상대로 사실상 사기를 치고 있는 셈이다.
이 전 회장은 1심에서 유죄가 나올 것을 우려해 에버랜드에 970억원, 에스디에스에 1539억원을 지급한다는 확인서를 1심 선고 직전인 지난해 7월11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의 개인 도장과 각 회사 대표 직인까지 찍혀 있다. 그런데 삼성 쪽은 에버랜드의 경우 회사에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대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970억원 전액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주고, 에스디에스도 최종 판결이 나면 그 결과에 따라 1539억원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이 전 회장에게 되돌려주겠다고 하고 있다.
이는 지급확인서에서 밝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전 회장은 “회사의 손해 발생 여부를 떠나 공소장에 피해액으로 기재돼 있는 돈을 위 회사에 지급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삼성이 대법 판결을 빌미삼아 돈을 다시 이 전 회장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재판부를 우롱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에버랜드와 에스디에스가 이 돈을 받고도 회계처리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각 회사 대표는 이 전 회장의 돈을 수령했다고 회사 직인까지 찍었는데, 1년 넘게 회사 수입으로 잡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전 회장에게 되돌려줄 생각을 하고 일시 보관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이제 사법부는 양형 참고자료가 재판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일단 목적을 달성했다고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게 합당한 일인지 명확히 답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에 지급했다는 2509억원의 출처가 어디인지, 또 그 돈을 회계처리하지 않은 게 분식회계는 아닌지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엄정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사법부와 금융당국이 삼성의 ‘하부기관’이 아니라면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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