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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소 자영업자들의 이유 있는 ‘반란’ |
동네 슈퍼마켓에 이어 책방이나 빵집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본격적으로 생존권 지키기에 나섰다. 동네 슈퍼마켓들이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진입을 막아달라는 사전조정신청을 낸 데 이어 서울서점조합도 8월 말 영등포에 개장하는 교보문고를 상대로 엊그제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전조정신청서를 제출했다. 대기업들의 동네상권 장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던 영세업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사업조정신청을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형 슈퍼마켓 하나가 동네에 들어서면 주변에 있는 수십개의 구멍가게는 그날로 문을 닫게 된다. 구멍가게에 비해 월등한 자금력과 유통시스템 등을 갖고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소비자를 다 끌어가기 때문이다. 대형서점이나 대형마트 주유소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 이어 서울서점조합, 제과협회, 주유소협회, 안경사협회 등 중소 자영업자들이 대기업 진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너무나 당연한 움직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쟁을 최우선시하는 시장논리가 팽배해짐으로써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힘 있는 대기업들이 동네상권까지 장악해도 이를 당연시했다. 그 와중에 영세 자영업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대규모의 자영업자 몰락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최대 숙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사회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참다 못한 중소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제 정부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놔야 할 때다. 현재 기업형 슈퍼마켓의 진입을 막아달라고 중소기업중앙회에 제출된 조정신청 건수가 10여건에 이른다. 앞으로 서점이나 주유소·빵집·꽃집·미용실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업조정신청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적극 받아들여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대기업들의 동네상권 잠식을 적절히 막아줘야 한다.
소비자 처지에서 볼 때 대형매장이 들어서면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는 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대기업이 경영하는 대형매장이 시장을 독과점하면 머잖아 시장의 다양성이 파괴돼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약받게 된다. 대기업과 중소 자영업자들이 공존하는 시장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이익을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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