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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3 21:04 수정 : 2009.08.03 21:04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 조성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역사성이었다고 자랑했다. 조선왕조는 물론 이후 역사 속에서 정치·사회·문화의 중심이었던 곳이니, 오 시장의 이런 광장 구상은 충분히 자랑할 만했다.

엊그제 개방된 광장의 겉만 보면 그럴듯하다. 청계광장에서 광화문, 경복궁에 이르는 이곳엔 이순신 장군과 대첩의 상징물, 한양의 상징물 해치, 월대 등이 늘어섰다. 광장 양옆으로는 육조거리가 재현되고, 역사 물길이라 명명된 실개천 밑으로는 역사의 파노라마가 기록돼 있다. 조선의 정궁 경복궁과 이를 위호하는 북악-인왕-낙산의 웅장한 어울림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나름대로 구색을 갖췄으니, 조성비 415억원이 아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뿐이다. 한번 둘러보고 나면 다리만 나른할 뿐 허전하다. 불행하게도 거기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고, 곱씹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역사성, 즉 정신이 없는 까닭이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광장이라면 모름지기 갖춰야 할 시대정신의 모태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 광장인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은 이라크전쟁 반대 등 반전평화운동의 메카다. 바스티유 광장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젤리제 광장은 우파의 광장으로도 불리지만,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이어가는 중심지 노릇을 한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광장은 반파시즘 공화주의의 정신을 계승하는 원천이다.

사실 광화문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의 공간은 봉건적 억압이 집중되고 확산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생 사대부는 물론 서민의 정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기도 했다. 유생들은 상소 형식의 시위를 했고, 서민은 민생 집회를 열었다. 생명을 건 도끼 상소로 잘 알려진 중봉 조헌과 면암 최익현 선생은 이를 통해 왜란 혹은 일제의 병탄을 경고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돌조각과 화초가 그저 눈을 부릅뜨고 있거나 살랑대고 있을 뿐이다. 설계할 때부터 그랬고, 개방을 앞두고 제정한 조례도 광화문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역사성이 돌 조형으로 박제화되고, 시민들의 창조적 열정이 억압되며,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봉쇄되는 곳을 광장이라고 할 순 없다. 그저 놀이터일 뿐이다. 놀이터라면 굳이 광화문 앞에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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