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5 21:38
수정 : 2009.08.05 21:38
사설
교육과학기술부가 그제 발표한 ‘역사교과서 집필 지침(안)’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우선 특정 정치이념에 따른 역사관을 강요한다. 교과부는 지난해 한국 근현대사 기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념 편향 시비를 없애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특정 정치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 서술 원칙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이 대폭 반영됐다. 초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건국(정부 수립)과 그 이후의 발전 과정에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는 목표부터가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도 노력했다’고 기술하도록 한 대목이다. 이승만 정부 아래서 반민특위가 설치됐지만, 당시 정부는 경찰이 특위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방관하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성취와 경제발전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쓰라고 못박은 것도 마찬가지다. 편향된 관점까지 못박은 것은 이승만·박정희 등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뉴라이트 계열의 전형적인 역사인식이다. 심지어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같은 중대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도 사실상 삭제하도록 했다.
지침의 내용이 지나치게 세세해 집필자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점 역시 문제다. 국정 체제였던 역사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꾼 이유는 다양한 교과서를 통해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이번처럼 국가가 사실은 물론 해석까지 개입해 특정 사관을 강요한다면 검인정 체제는 허울만 남게 된다. 역사왜곡 문제로 비판의 표적이 되는 일본조차 이렇게까지 교과서 집필 방향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교과서 지침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특정 역사관을 강요하겠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교과서는 학계의 다양한 논쟁과 연구성과를 폭넓게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지, 정권에 따라 멋대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특정 사관을 강요하는 새 지침(안)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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