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5 21:41
수정 : 2009.08.05 21:41
사설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어제 141일간 북한에 억류돼 있던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핵 협상 재개 등 전반적인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사태 진전이다.
미국 정부는 클린턴의 방북을 ‘개인 차원’의 방문, 여기자 석방을 ‘인도적 사안’으로 한정하며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안의 여론 동향을 살피고, 미국의 독주를 우려하는 한국·일본 등을 염두에 둔 태도로 보인다.그럼에도 북-미 관계의 큰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우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클린턴 회동에서 현안 문제들이 폭넓게 논의됐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견해가 일치했다고 보도했다. 핵 및 미사일, 국교 정상화, 협상 재개 문제 등이 두루 논의됐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북한 쪽에서는 대미 외교의 사령탑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대남정책 책임자인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이 배석했다. 핵 문제뿐 아니라 대남관계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전반적인 문제가 깊이 있게 얘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쪽에서도 클린턴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정권인수팀장을 맡았던 존 포데스타 진보센터 회장이 배석했다. 오바마 정부가 이번 방문을 매우 비중 있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북한 쪽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 방도와 관련한 견해를 담은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도 전달됐다고 전했다.
이제 두 나라가 이렇게 조성된 대화 환경을 어떻게 구체화해 결실을 얻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장 북한과 미국은 회담 재개 형식에서 ‘양자회담 우선이냐, 6자회담 우선이냐’를 두고 맞서 있다. 내용에서도 핵 폐기와 관계정상화·경제지원 등 양쪽이 취해야 할 조처를 배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들을 풀려면 양쪽 모두 좀더 유연해져야 한다. 먼저 북한은 6자회담 안의 양자회담을 흔쾌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안전보장과 경제지원도 한국·중국·일본·러시아가 빠지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미국 안팎의 대북 강경론에 휘둘리지 않고 협상 의지를 분명히해야 한다. 미국이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을 서둘러 구체화하는 것도 주요하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다뤄야 할 내용은 9·19공동선언에 사실상 다 나와 있는 만큼 시간을 끌어 협상 동력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일로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당장 미국 여기자는 풀려났는데 북한에 억류된 개성공단 직원과 ‘800연안호’의 석방을 위해 정부는 무얼 했느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대북 강경 보조를 취해온 일본 자민당이 이달 말 총선에서 정권을 내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제 정세가 대북정책의 전면적이고 신속한 궤도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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