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6 22:33
수정 : 2009.08.06 22:33
사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관련한 우리 정부 태도를 보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은 채 방문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클린턴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 사이의 현안 문제들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로 “견해일치가 이룩됐다”고 밝혔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클린턴을 직접 만나 논의 내용을 듣겠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간접 정상회담이 이뤄진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클린턴 방북은 개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 “한-미 공조가 잘되고 있다” 등의 말만 되풀이한다. 강경 기조 대북정책을 합리화하려고 객관적 현실까지 견강부회 식으로 비트는 모습이다.
이런 태도가 현안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여기자 억류 문제를 풀려고 전직 대통령까지 북한에 보냈으나, 우리 정부는 비슷한 시기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문제와 관련해 개성공단 실무접촉에서 몇 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 전부다. 미국처럼 억류자 문제를 다른 사안과 분리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난주 북한에 억류된 연안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기본적 책무조차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현안은 당연히 전반적인 대북정책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 전환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현안을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기대하며 이번 클린턴 방북에 공을 들인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은 바뀌려 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변화만 요구하는 것은 현안을 더 악화시키고 정세변화에서도 소외되는 최악의 선택이다.
정부는 한-미 공조가 모든 문제의 해법이라도 되는 듯이 말한다. 미국에 의존해 대북 압박을 계속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비현실적인 태도를 빨리 버리지 않으면 사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출발하면 현안들을 풀고 정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데 왜 남의 눈치만 살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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