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남북관계 변화의 물꼬 트는 계기 되길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의 석방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어제 평양 방문 길에 올랐다. 남북 사이의 대화가 꽉 막힌 상태에서 모처럼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다. 그의 방북이 그동안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선, 북한은 이번 기회에 현대아산 직원의 석방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을 방문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자 두 명을 동행하고 귀환했던 것처럼 현 회장이 남쪽으로 돌아올 때는 현대아산 직원도 함께 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남북이 아무리 심각한 대립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남한 주민을 인질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이번 현 회장의 방북은 북한 쪽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성사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중단 상태에 놓인 금강산 관광과 침체 일로에 있는 개성공단 등 남북간 핵심 경제협력 사업이 되살아나는 실마리가 되길 빈다.
우리 정부 역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정부는 현 회장의 방북에 대해 “사업자 차원의 방북”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부가 물밑으로는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겉으로만 짐짓 일정한 선을 긋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때와 비교해 보면 현 회장의 방북 성사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한 역할은 매우 미미해 보인다. 대북사업의 동결로 어려움을 겪는 현대 쪽에 사태 해결의 책임을 너무 떠넘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비록 불가피하게 현대 쪽이 남북대화의 전면에 나섰다고 해도 결국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주체는 정부다. “현대아산 문제니까 현대아산이 책임지고 하는 것” 따위의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의 북핵 폐기에서 북핵 봉쇄 쪽으로 무게중심을 바꾸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나온다. 자칫 우리만 요지부동의 독선을 부리다가, 닭 쫓던 개 꼴이 될 수 있는 형편이다. 이미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우리 정부는 뒷머리를 한 번 맞은 상태 아닌가. 남북관계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부의 좀더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