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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절차도 원칙도 사라진 한나라당의 공천갈등 |
오는 10월 재보궐선거의 후보 공천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에 잡음이 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이 전·현직 당 대표이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박희태 대표는 그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알았다는 반응만 보였다지만, 박 대표 쪽은 애써 격려 따위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그는 어제도 자신이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고 강조하면서 출마 결심을 거듭 밝혔다. 자신을 전략공천 해달라고 떼를 쓰는 셈이다.
박 대표의 이런 행보는 보기 흉하다. 무엇보다 이는 당의 공식 절차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당헌·당규는 공천심사위에서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통해 공직 후보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지난 7월 당 쇄신특위가 마련해 최고위원회의 추인까지 받은 당 쇄신안은, 재보선 때도 총선처럼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고 후보자간 토론을 하도록 했다. 박 대표는 당헌은 물론 스스로 추인한 쇄신안까지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에게 공천 보장을 애걸하는 모양새는 더 꼴사납다. 대통령의 낙점으로 여당의 공천이 이뤄지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구태다. 한나라당도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당무 관여를 공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터다. 대통령에게 기대는 듯한 박 대표의 행보는 정당정치를 한참 뒤로 퇴행시키는 일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후보 경선 때 자신을 도운 인사의 강원도 강릉 재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것도 온당해 보이진 않는다. 박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런 행동은,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의 측근을 공천해 달라는 사실상의 압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행보가 자신이 강조해온 원칙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4월 경주 재선거 당시, 공천을 받아 낙선한 사람을 다시 공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에 박 전 대표가 지원하는 인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원칙보다는 계파 이익을 우선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잖아도 한나라당 안에선 공천이나 박 대표의 사퇴 시기 등을 놓고 계파 갈등이 심각하다. 당권 장악 따위 이런저런 계산에서 나온 다툼일 것이다. 그런 집안싸움에 열중하다 형식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틀까지 훼손하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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