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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죄라도 처벌은 않겠다는 삼성사건 판결 |
법원이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과 관련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의 배임죄를 인정하면서도 1심과 똑같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미 조세포탈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터에 이런 판결을 했으니 ‘봐주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헐값 발행에 대해 배임죄를 인정한 것은, 1심 법원의 여러 오류와 억지 논리를 바로잡은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법원 판단대로, 신주인수권을 공정한 행사가격보다 많이 낮게 이재용씨 등에게 넘겨 회사에 227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면 엄연한 불법이다. 그에 맞는 법적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법원은 상식 밖의 논리로 추가 처벌을 면제했다.
법원은 주당 가격의 격차가 작으니 비난 가능성도 작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회사에 끼친 손해액이 모두 얼마냐에 따라 공소시효나 양형을 달리하는 관련 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런 식이라면 싸게 주식을 넘기더라도 주식 수를 늘리면 큰 손해를 끼쳐도 괜찮다는 얘기가 된다. 한 사람을 봐주자고 이런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어리석다.
법원은 기업인 범죄에서 흔히 내세워온, 손해를 이미 변제했다는 따위의 감형 요건을 이번에도 되풀이했다. 하지만 삼성에스디에스의 감사보고서 등을 보면 이 전 회장이 변제한 흔적은 없다. 또 사건 경위를 보면 다른 감경 요건은커녕 가중 요건만 수두룩하다. 주주·근로자 등 피해자가 여럿이고, 범죄수익을 임직원 차명계좌 등을 통해 은닉했으며, 기업 지배권을 강화·승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은 모두 대법원의 새로운 양형기준이 가중처벌 요건으로 꼽고 있는 것들이다. 배임액 227억원이면 4~7년의 중형에 해당하니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집행유예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중형을 선고할 죄인데도 이렇게 대놓고 봐주면서 어떻게 법 앞의 평등을 말할 수 있겠는가. 법원 스스로 이번 판결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다.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은 특검이나 법원에서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 그나마 드러난 불법에조차 법원은 무죄 등 면죄부를 줬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로 더이상의 처벌도 어려워진 듯하다. 사법정의와 경제정의를 위해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가 불법이라는 점만은 이번 판결로 더욱 분명해졌다. 삼성의 반성과 책임지는 모습이 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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