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선거제도 논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여권의 자세 변화 |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역주의 해소와 정치문화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 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이 대통령의 제안에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당내에 선거구제 논의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선거제도나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 이야기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5년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연정과 함께 중·대선거구제를 한나라당에 제안한 바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행정구역 개편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현재 국회에는 여야 합의로 지방행정체제 개편특위가 구성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 사안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현실적 추동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현실성이 없으면 하나마나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의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되돌아보면 중·대선거구제 전환 등에 완강히 반대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여야 합의에 앞서 우선 ‘집안 정리’부터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론관련법 날치기 처리 이후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제안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원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야권 한쪽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거제도 변경이나 행정구역 개편이 우리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손질을 해야 할 과제라면, 말이 나온 김에 정치권이 이번에 매듭을 잘 지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청와대와 여권의 자세 변화가 필수적이다. 선거제도 개편 등은 사안의 성격상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끌고 갈 수 없는 문제다. 서로 대승적으로 양보할 것은 양보해 가면서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여야 간에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게 파인 상태에서 이런 어려운 과제를 성공으로 이끌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노릇이다. 이번 제안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여권이 먼저 언론관련법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게 순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