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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 전 대통령 서거, 여권의 깊은 성찰 계기 되길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국적인 추모 열기가 높다. 여도 야도, 좌도 우도 없어 보인다. 일부 극소수를 빼면 사회 전체가 모처럼 한마음으로 고인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이런 추모와 애도의 열기 속에는 민주발전, 경제번영, 국민화합, 남북화해 등 고인이 평생 추구해온 꿈과 희망의 실현에 대한 바람이 짙게 녹아 있다. 그만큼 정치권, 그중에서도 여권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먼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고인의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 중에는 생전에 고인과 악연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를 핍박하고 탄압한 가해자는 있어도, 그에게 정치적 박해를 받은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인이 가혹한 탄압의 세월을 겪어 오면서도 용서와 화해의 신념을 굳게 지킨 결과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역과 정파를 초월한 대통합과 대화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권이 진정으로 ‘대통합과 대화합’을 이루려면 지금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부터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구호로만 그치지 않는 진정한 화합과 용서의 자세를 고인의 영정 앞에서 다듬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고인을 “아프리카 반군 지도자” “한국판 호메이니” 따위로 비판했던 게 사실이다. 고인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등을 지적한 데 대한 독설과 야유였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저세상으로 떠난 지금, 여권은 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왜 그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민주회복을 외쳤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길 바란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고인은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우리 정치의 큰 별”이라고 추모했다. 박 대표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여권은 고인의 말을 깊이 새겨 국정운영의 기조를 새롭게 가다듬었으면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까지 세상을 떠난 지금, 앞으로는 ‘잃어버린 10년’ 따위의 말을 더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말이 고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만 해봐도 여권의 자제와 자숙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물론 여권의 입장에서는 고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적 방향과 생각이 어긋나는 대목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는 자세로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난 시대의 긍정적 유산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진정한 중도실용의 자세요, 현 정권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김 대통령의 서거가 여권의 근본적 태도변화의 계기가 되길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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