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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어제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속에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 표현도 담겨 있고, 정국 현안에 대한 사려 깊은 평가와 진단도 들어 있다. 정부를 향한 비판과 경고의 메시지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겨레에 대한 걱정의 짐을 내려놓지 않은 고인의 나라 사랑이 경이롭다.
무엇보다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은,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뚫고 온 투사의 삶 뒷면에 숨겨져 있던 인간적 체취와 면모였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읽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글들이다. 삶을 대하는 경건한 자세,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손자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과 믿음이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특히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 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는 구절은 읽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럼에도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아무래도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은 구절들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용산에서 5명이 죽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고인의 이런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후퇴와 남북관계의 위기 등에 대해서는 이미 생전에 연설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일기 내용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사적인 기록인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고인의 진정성과 절박함 때문이다. 그런 비판이 얼마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것인지를 일기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현 여권이 이 일기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는 전체 100쪽 분량 중 30쪽 정도라고 한다. 미공개 부분에는 더욱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부분까지 공개되면 정치적 파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으로선 곤혹스럽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기 내용의 폭발력이나 파장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국가 원로인 고인이 진실로 걱정한 게 무엇인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떤 충언을 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고인의 충고와 지적을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고인이 남긴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경구는 여권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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