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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형 슈퍼, 허가제 도입이 근본 처방 |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기 위한 사업조정제도가 혼선을 빚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시·도 사전조정협의회에 1차 조정을 맡겼지만 협의회 구성부터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조정 신청 당사자인 중소상인들과 피신청인인 기업형 슈퍼의 협의회 참여 여부를 놓고 중기청이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했던 중소상인들에겐 매우 실망스런 상황이다.
중기청은 신청인과 피신청인을 협의회에 포함하려던 애초 방침을 바꿔 두 당사자를 모두 배제하도록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보냈다. 두 당사자가 참여하면 갈등이 첨예해지고 합의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기업형 슈퍼가 들어서면 골목상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가장 알 아는 쪽은 당사자다. 따라서 이들을 배제한 채 협의회를 구성한다면 현실성 있는 조정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른바 ‘중립적 인사들’로만 협의회를 구성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중립적 인사들은 대부분 각계 전문가이거나 관계기관 (추천)인사들일 것이다. 이들은 힘없는 중소상인들보다는 대형 슈퍼마켓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 협의회 위원들에 대한 로비력이나 상권 분석력 등에서 대형 슈퍼 쪽이 중소상인들보다 월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계 전문가나 관계기관 인사들과 대기업의 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형 슈퍼에 대한 규제정책이 이렇게 초반부터 난항을 겪는 것은 중앙정부 탓이 크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권 다툼을 별 권한도 없는 지자체에 맡겨 합의점을 찾도록 하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사전조정이 효과가 있으려면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맡기기 전에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이런 일은 소홀히 한 채 지자체에 1차 조정을 맡긴 것은 자칫 분쟁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결국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고 기업형 슈퍼를 적절히 규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선진국처럼 중소상인들의 상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슈퍼는 아예 개설을 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근본 처방 없이 지방정부가 사전조정을 통해 기업형 슈퍼를 규제하도록 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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