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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민당 시대 마감한 일본의 선거혁명 |
일본 국민은 어제 치른 총선에서 민주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일본 정치사에 새 장을 열었다. 1955년 이후 54년간 단 한 번도 제1당의 위치를 놓친 적인 없던 자민당에 결정적 패배를 가하고 선거를 통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이다. 가히 선거혁명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는 엄밀히 말해 자민당이 자멸한 결과다. 2차대전 이후 이합집산하던 보수정당들을 반공과 시장자유주의란 공통의 기치로 통합해낸 자민당은 기업과 관료를 등에 업고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90년대 거품이 터지면서 자민당과 일본 국민 사이의 균열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자랑이던 평생고용 체제가 깨지고, 빈부격차는 확대됐으며,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반면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했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했지만 자민당은 지지기반인 기업과 관료의 저항 앞에 무력했다. 물론 당내 기득권층에 맞서 우정 개혁을 단행하는 등 국민의 변화 요구를 담아내려 노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뒤이어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일본 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액은 연율로 11.7%나 감소했고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이명박 정권처럼 공공사업 확대로 대응했다.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일본 국민이 자민당을 버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담아낼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우애’를 자신의 정치 이념으로 제시한다. 그에게 우애란 미국식 시장근본주의를 통제하고 좀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원칙이자 동아시아 공동체 창출을 위한 이념적 바탕이다. 그의 우애 이념이 일본을 좀더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바탕이 되기를 기원한다.
일본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려면 이 지역 평화와 안전의 수호자 구실을 해야 한다. 지난 세월 일본은 그런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 역사인식과 영토분쟁 그리고 군비증강으로 이 지역 안보 불안을 자극했고,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선 회담과 직접 관계없는 납치문제를 제기해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없인 동아시아 공동체도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 대표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점에 주목한다.
미국과 일본의 정권교체는 우리 대외정책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가동된 북과의 대화 기조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 달라진 국제여건 속에서 우리만 소외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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