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비밀경찰 연상케 하는 국정원의 감청 |
참여연대 등 사회단체들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이 통일운동 단체 간부를 수사하면서 두 달 동안 집과 사무실의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엿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른바 ‘패킷 감청’이다. 정보기관의 감청 행태가 민주사회에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도 국정원이 지나치리만치 자주 감청을 하는데다 구체적인 감청 실태 또한 공개되지 않아, 인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정부 기관의 전체 감청 가운데 98.5%를 국정원이 했다. 더욱이 국정원의 이런 활동은 사실상 누구의 감시와 통제로부터도 벗어나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드러난 인터넷 감청은 지금까지 지적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수사 대상자의 모든 인터넷 사용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용의자와 같은 인터넷 회선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인터넷 활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수사 대상자의 집과 사무실에 유령처럼 숨어들어서 컴퓨터 화면을 줄곧 지켜보는 식이다. 게다가 재판이 열릴 때까지는 아무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 이쯤 되면 독재국가의 비밀경찰이 국민을 세세하게 감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더욱 당황스러운 사실은, 국정원의 이런 활동이 합법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의 통신비밀보호법이 너무나 허술한 탓이다. 이 법에 따른 감청 규제는 구체적이지 않고 곳곳에 예외 조항을 둠으로써 국정원의 이런 감청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통신비밀보호법을 좀더 엄격하게 바꾸고,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수사 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인권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보호와 직결된다는 면에서 좀더 상위법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시민들의 각성도 요구된다. 적지 않은 이들은 이런 심각한 감청 사례가 드러나도 남의 일이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수사 대상자와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정보기관한테 감시당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인권 침해에 맞서는 일은 인권운동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사회를 이루는 모든 시민의 임무임을 이번 일은 새삼 확인시켜 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