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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권의 후안무치 확인한 ‘교과서 파동’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어제 저자의 동의 없이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며 금성출판사에 <한국 근현대사>의 발행과 배포를 중단하고 저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저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책의 내용이나 형식을 본질적으로 바꿔서는 안 되며, 교과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출판사가 큰 불이익을 받게 되는 형편이더라도 저자들이 고치지 말라고 분명하게 밝혔다면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 역시 저작권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런 판결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을 정부가 교과서를 수정하라고 무리하게 압력을 가한 데 있다. 그런 압박이 없었더라면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 이런 소송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원고는 물론 피고인 금성출판사도 피해자인 까닭이다. 앞서 금성출판사 대표는 “교과서 내용은 집필자의 몫이고 출판사는 교과서를 발행할 책임만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직권수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인정 교과서의 검정 취소나 발행 정지 권한을 갖는 교과부가 얼마나 극심하게 출판사에 압박을 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뉴라이트를 비롯한 우파 세력이 초·중·고교에 사용되는 일부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수정 요구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근현대사와 국사·경제 교과서의 일부 내용을 문제삼았고, 그 대표적인 목표물이 금성출판사가 출간한 <한국 근현대사>였다. 교과부는 지난해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55개 항목을 수정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가운데 36개 항목이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지시를 그대로 이행할 경우 교과서가 누더기가 될 것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우려를 제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교과서는 임의수정돼 발행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과부는 이번 판결에 아랑곳않고 대법원의 확정판결 때까지 문제의 금성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교과서 파동을 빚은 원인제공자로서 너무나 뻔뻔한 태도다. 어떤 불법·탈법적 행위를 해서라도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후안무치가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교과부는 이제라도 이성을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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