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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적절한 손병두 KBS 이사장 선출 |
〈한국방송〉(KBS) 이사회가 그제 새 이사장으로 기업 논리의 대변자 구실을 하던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을 선출했다. 손 이사장은 삼성그룹을 거쳐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오래 일했으며 방송 관련 경력은 거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정책자문위원을 맡은 친정부 인사이기도 하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본 등 기득권 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성, 방송 문화를 발전시킬 전문성을 목표로 해야 할 한국방송과는 어떤 면에서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방송이 최근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사장으로 더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방송 이사회는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과 기본운영계획 등을 심의·의결하고 사장과 감사의 임명제청권, 부사장 임명동의권 등을 갖고 있다.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해서 공표하는 일도 이사회 책임이다. 곧, 이사회는 한국방송의 방향을 결정하고 핵심 경영진 인사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 기구다. 제도적으로 볼 때 정부·여당과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들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구조여서, 출발에서부터 정치권의 이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한계는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사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수호하는 데 전념해야 마땅하다. 투철한 책임의식이 없는 한 한국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에 새로 구성된 이사회는 이사장 선출부터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손 이사장이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지만, 다수 이사들이 그를 뽑았다는 점 또한 심각하다. 이사들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권력 핵심부와의 교감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새 이사회가 정부나 자본의 개입, 재벌·족벌 언론의 견제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는 보루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공영방송의 모델로 영국의 <비비시>(BBC)를 거론한다. 곳곳에서 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내는 정부·여당조차 한국방송을 비비시 같은 공영방송으로 키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비시의 진정한 힘은, 전문성과 책임감 있는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사실엔 주목하지 않는다. 정부나 이사회에 기대할 게 없다면, 남은 것은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적극 나서는 일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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