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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책편중 바로잡는 총리가 되길 |
어제 발표된 개각 내용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기치로 내건 중도실용과 지역통합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 후보자로 발탁한 것부터가 자못 신선하다. 장관 인사도 지역과 출신 학교, 여당내 계파 등을 고루 안배하는 데 힘썼다. 그동안 업무 수행 능력이나 조직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장관들도 다수 교체됐다. 비록 흡족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현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돋보이는 인사다.
이번 개각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후보 지명이다. 그를 이념적으로 분류하자면 합리적 보수주의자 내지는 리버럴 중도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교육 문제 등에서는 현 정부와 생각이 거의 일치하는 편이지만 경제 문제에서는 정부 정책 기조와 크게 엇갈린다. 특히 그는 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중인 4대강 정비사업 등에 대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미래세대의 부담이 될 것” 등의 쓴소리를 해왔다.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을 비롯해 자유무역협정(FTA) , 금산분리 문제 등에서도 정부와 다른 시각을 보여왔다.
정 총리 후보자로서는 자신의 이런 평소 지론과 소신을 내각의 총사령탑으로서 현실에서 구현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여권 인사들과 사사건건 부닥치거나 내부 불협화음을 내서도 곤란하다. 대통령의 비위나 맞추며 정권의 장식품 노릇에 만족하는 총리로 머물러서는 더욱 안 된다. 이런 점에서 그가 총리 후보 지명 직후 한 기자회견 내용은 다소 실망스럽다. “이 대통령과 나의 경제 시각이 다르지 않다”거나 “4대강 정비사업은 쉽게 반대할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벌써부터 자신의 소신을 접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정 후보자의 그동안 발언록을 보면, 뜻밖에도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문제에 대한 언급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전공인 경제 문제에 대한 잦은 소신 피력과는 달리 촛불집회, 언론 파동, 공안통치 논란, 비정규직 문제 등 현 정권과 반대자들 사이에 첨예하게 의견이 맞서는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새로 출범할 내각이 진정한 화합 내각, 중도실용 내각이 되려면 이런 현안들에 대한 그의 전향적인 사고와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강경일변도 국정운영 흐름을 앞장서서 바꿔나가지 않으면 지금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의 큰 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 총리 후보자에게 이번 입각은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큰 모험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첫 시험대는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총리로서 국정운영 전반에서 역량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역정은 이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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