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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졸속 행정구역 통합을 경계한다 |
전국 곳곳에서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접한 시나 군을 합쳐 큰 도시로 만들자는 짝짓기가 한창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자발적으로 통합하는 자치단체를 획기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뒤 이런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하지만 불협화음도 만만치 않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상대편의 뜻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해 반발을 사는가 하면, 주민들 간에도 첨예한 찬반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행정구역 통합 필요성의 가장 큰 근거는 행정의 효율성 증대다. 현재의 중복된 행정구조에 따른 예산 낭비와 주민 불편을 없애고 지방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같은 단지 아파트 안에서도 행정구역이 서로 다른 곳이 있는가 하면, 한 기업체를 놓고 2~3개의 자치단체가 제각기 관할권을 행사하는 지역도 있다. 같은 생활권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합치면 시·군 청사, 문화체육시설 등을 여러 곳에 따로 지을 필요도 없어진다. 통합론자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와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시대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예전에 만들어진 행정구역에 계속 매달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보면 종합 청사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행정구역 개편은 단순히 행정의 효율성 차원에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바람직한 역할 분담은 어떻게 돼야 할지, 주민 참여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등 고민해야 할 대목이 무척 많다. 실제로 상당수 학자들은 기존의 도를 없애고 통합광역시로 분할해 버리면 오히려 지방분권이 후퇴하고 중앙집권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는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통합을 주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정구역 통합의 절차와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은 단순한 땅덩어리가 아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유기체다. 간단히 지도에 줄을 그어 합치고 줄이고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부의 유인책에 이끌려 무조건 합치는 데만 주력할 게 아니라 나라와 지역의 미래를 위해 좀더 면밀하게 따져보고 추진하는 게 옳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 스스로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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