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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판과 감시에 끝까지 재갈 물리려는 이명박 정부 |
지난 6월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통해 시민단체를 옥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해, 그제 정부가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시민사회의 대표적 인사를 겨냥해 본보기 삼아 혼내주려는 모양으로 비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중도·실용이나 화해 따위 말이 무색한 행태다.
이번 소송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원천봉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매우 크다. 박 이사의 발언은 정부를 상대로 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봐야 한다. 그의 발언 가운데 정부 쪽이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있더라도, 국정원이 여러 방식으로 시민·사회단체와 비판 언론을 압박하고 괴롭힌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기업 지원 차단, 공익사업 참여 배제 등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흔적은 한둘이 아니다. ‘허위 사실’이라는 정부 주장의 전제부터 틀렸다. 그런데도 사소한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은, 비판과 반대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선 아예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표현 자유의 부정이다. 독재가 따로 없다.
이런 소송이 권력 남용이 아닌지도 의심된다. 정부 논리에 따른 민사소송이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소송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가가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정부기관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를 주장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정부기관을 국가와 동일시할 수도 없거니와, 법적으로 국정원 등에 명예의식 따위 인격이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형사소송에서도 정부·정당 등은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아니다. 또 박 이사의 주장은 공익을 위한 것이므로 법원에서 위법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소송을 강행했으니, 국고와 전담 조직 등 막대한 힘을 무기 삼은 ‘반대세력 괴롭히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길 없다. 이런 일은 피디수첩 사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 한둘이 아니다. 국정원의 무리한 행태는 대통령의 심복이라는 원세훈 원장이 취임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번 소송도 국정원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정보기관을 정권 보위에 앞장세운 결과가 어땠는지는 이미 역사에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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