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한바탕 ‘헛발질’로 끝나는 박연차 사건 |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정·관계 로비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어제 일부 있었다. 박 전 회장이 징역 3년6월을 선고받는 등 여럿이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았다. 그러나 적용된 죄나 사회적 파장에 견줘 보면 여러모로 어설프다. 형이 엄해 보이지도 않거니와 의혹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 것 같지도 않다.
그 책임은 마땅히 검찰에 있다. 애초 대검 중앙수사부가 수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의 핵심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이었다. 당연히 ‘살아있는 권력’이 수사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지난 정권으로 칼날이 옮겨졌다. 세무조사 문제는 지난 정권을 옭아맬 증언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과 흥정거리로 이용됐을 뿐이다. 현 정권 인사들의 의혹은 얼렁뚱땅 덮였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나 이상득·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등에 대해선 직접조사조차 없었고,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엉뚱하게 개인 비리로만 기소됐다. 애초 검찰 수사가 이렇게 부실했으니 재판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검찰의 헛발질은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천신일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이어 박 전 회장 구명 로비까지 벌였다는 의혹이 법정 증언으로 확인됐고, 기소된 이들 말고 여러 명의 국회의원과 검사들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거나 정치적 득실을 따져 선택적으로 기소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기소 내용 이상의 돈을 받은 사실이 새로 드러난 현직 검사에 대해선 “대가성 없는 용돈”이라고 검찰이 대신 변명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가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이었으니, 제대로 된 처벌이라고 볼 수 없다.
검찰은 또 20년 이상의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는 데 그쳤다.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수사에 협조한 대가가 아니냐는 눈길을 피하기 어렵다. 수사를 책임졌던 전직 중수부장이 퇴임 뒤 박 전 회장의 변호를 맡은 법률회사에 들어간 것도 보기 흉하다. 그러잖아도 이번 사건의 사실상 유일한 증거라는 박 전 회장의 증언이 신빙성과 임의성을 의심받는 터다. 수사와 기소, 구형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부실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보잘것없는 이번 재판 결과는 그 당연한 귀결이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부실 수사를 보완해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