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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엠비 코드’에 맞춘 총리 후보자의 현안 인식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본 소감은 씁쓸하다. 정 후보자가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너무 빨리 ‘엠비 코드’에 맞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히 용산참사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들에 대해 정부의 기존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 후보자의 총리 지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은 주된 이유는 그가 현 정부의 편향된 사고나 정책을 바로잡는 ‘균형자’ 구실을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상징적 시험대가 바로 용산참사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처음부터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서면답변을 통해 용산참사 원인에 대해 “농성자들이 투척한 화염병 때문”이라고 밝혔다. 3000쪽 분량의 수사기록 미공개에 대해서도 “화재사고 입증과 관련이 없는 서류들”이라고 검찰 쪽 입장을 되뇌었다. 그의 답변을 보면 과연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공권력 남용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왔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가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정 후보자가 벌써부터 별다른 고민 없이 공무원들이 써주는 원고나 그대로 읽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 후보자는 ‘규제완화·개방확대’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바른 방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대강 살리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그동안 자신이 강하게 비판해온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대부분 용인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총리가 정부 정책을 두고 청와대 등과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입장 변경’은 그의 총리 지명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새삼 묻게 만든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사업에 대해서도 정 후보자는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고 본다. 자족기능이 부족한 것 같다”며 원안 수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감세정책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도, “기조를 다시 바꾸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고려할 때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은 세종시에는 적용되지 않아도 좋은 건지 묻고 싶다. 정 후보자가 앞으로 ‘건전한 비판자’ 노릇 대신 이 정권의 총대나 메는 구실을 하는 건 아닌지 사뭇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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