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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공 ‘관계기관 대책회의’ 악령 되살리는 국정원 |
국가정보원이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지난해 노동부 쪽과 수시로 만나, 직무범위도 아닌 노동현안에 관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춘천·광주·인천 등 지방에선 해당 지역 정보담당 요원이 지방노동청 쪽과 만나 ‘노사분규 대책’ 및 ‘노동조합 운영 지도방안’을 논의했고, 본부에선 노동부·경찰청과 ‘공공부문 구조조정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국정원과 노동부가 논의했다는 이들 문제는 법적으로 국정원이 관여해선 안 되는 일이다. 현행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직무를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특히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 등은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에 관한 것만 가능하도록 그 대상을 일일이 명시하고 있다. 다른 문제에 대한 정보 수집, 특히 일반 시민의 공·사생활에 대한 사찰은 어떤 이유로도 할 수 없도록 못박은 것으로 봐야 한다. 노조의 운영이나 노동쟁의 등은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것이어서, 애초부터 국정원의 정보 수집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관여했다면 직무범위를 넘은 정치사찰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국정원과의 정보 공유가 ‘금도’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런 정보 공유 자체가 바로 실정법이라는 금도를 넘는 일이다.
이런 행태가 5공 시절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은 더 걱정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의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청와대나 안기부 간부가 주재하는 비공식 회의로, 박종철군 고문치사의 은폐·조작을 결정하는 등 비민주적·반인권적 폭압정치의 핵심이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이 법으로 금지되고 직무범위가 한정된 지금은 더더욱 존재해선 안 될 기구다. 국정원이 노동부·경찰청과 수시로 대책회의를 했다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되살린 것이 된다. 지난해 8월 열린 언론 대책회의에 방송통신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장,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국정원 2차장이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일도 있다. 이런 식의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다른 일에도 몰래 열리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즉각 이런 불법행위를 멈춰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못한다면 국회가 나서서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이런 행태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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