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24 22:06
수정 : 2009.09.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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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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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뒤 여권 한쪽에선 박근혜 전 대표를 원망하는 소리가 높았다. 박 전 대표가 나서기만 했어도 판세가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다. 당 지도부도 은근히 이쪽으로 패배의 원인을 몰아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패배의 원인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과 민심 이반에 있었다.
5개월 만에 처지가 뒤바뀌었다. 한때 한나라당을 추월했던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30% 안팎에서 정체 또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나라당이 30%대 중후반까지 상승하면서 지지율 격차가 다시 커지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 힘입어 50% 가까이 치솟았다. 기존 지지층에 더해 중도층까지 끌어안은 모양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통합과 연대를 들고 나왔다. 10월 재보선이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야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연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민주당이 허울뿐인 구호라고 평가절하하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에 닥친 위기의 본질은 과연 정파 난립 때문일까?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요즘 민주당은 몇 달 전 한나라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지지율 정체의 원인을 정파간 분열로 돌리는 태도가 그렇다. 민주세력이 연합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 전통 지지층 회복 이후 당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자기 혁신과 변화를 통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통합과 연대는 그다음 문제다. 통합을 한다고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다. 2007년 대선 때 경험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파의 이합집산이 민심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진보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고 민주개혁 진영의 자세를 꼬집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 없이 비판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재보선 불출마를 밝히면서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사기·위장으로만 안이하게 비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장의 전투가 중요한 게 아니고 미래에 대한 대안과 해법을 가지고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되찾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이런 목소리들은 작은 울림에 그치고 있다.
친서민 정책에 재미를 본 이명박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등 민주당의 주요 정책이었던 것까지 갖다 쓰고 있다. 감세정책도 사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그 기조가 많이 후퇴했다. 오히려 재정정책이 앞서가는 상황이다. 그뿐 아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영입했다.
정작 민주당은 달라진 게 없다. 전임 대통령들의 서거정국을 거치면서 ‘유지 계승’에만 매달렸다. ‘부자 감세’ 등 현 정권에 대한 비판도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으로 표적을 잃은 상황이다.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도는 양상이다.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인기영합적이고 이미지 포장에 치우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 없이 껍데기뿐이라고 몰아붙이거나 비아냥거리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는 둘째 문제다. 그에 앞서 국민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변화를 모색했고, 민주당은 그렇지 못했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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