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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실리파 현대차노조’ 등장이 던지는 과제 |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현대자동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서 14년 만에 ‘실리’를 전면에 내세운 집행부가 등장했다. 어제 집계가 끝난 지부장 결선투표 결과, ‘실리파’ 이경훈 후보가 전체 투표의 52.5%를 차지해 당선됐다. 현대차지부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범민주파’의 패배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민주노총의 행보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후보의 당선은 노동운동 전반에 두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로 주목할 점은, 정치·사회적 대의를 앞세운 투쟁보다는 실질적인 이익을 강조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대차 노조에 그동안 실리를 중시하는 성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지원이나 산별노조 활동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았던 것도, 실리주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를 극대화한 모습으로 드러낸 셈이다.
둘째로 이 후보의 당선은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감의 핵심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개별 사업장 문제보다는 정치적 투쟁에 집중한다는 판단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를 하나로 묶기 위해 현대차지부를 지역지부로 전환하라는 금속노조의 요구에 대한 반발이 이번 선거에 꽤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리파 현대차 노조의 등장은, 2000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유일한 살 길처럼 생각됐던 ‘산별노조 전략’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 노동계는 기업별 노조로는 정부와 자본 일반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며, 같은 업종의 노조가 하나로 뭉쳐야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지킬 수 있다고 봤다. 이런 전략에 따라 보건·금융 등의 분야에서 산별노조가 결성됐고 금속노조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현대차 조합원들은 산별노조가 실질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판단을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냈다. 그렇다고 산별노조가 비정규직 보호와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효과적으로 관철시킨 것도 아니다. 실리파 현대차 노조의 등장은 정치적 투쟁보다 실리를 강조하는 현장 흐름 속에서 산별노조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 전략을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 하는 어려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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