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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졸렬한 검찰의 ‘유서대필’ 재심 훼방 |
검찰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하는 즉시항고 이유서를 대법원에 냈다. 재심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지만, 낯 뜨거울 정도의 치졸한 억지가 한둘이 아니다.
검찰의 주장에선 법 논리 대신 감정적 비난이 두드러진다. 법원이 애초 재심 개시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991년 당시 강기훈씨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 근거가 된 김형영씨의 필적감정을 더는 믿을 수 없게 됐으며, 새로 발견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이 자살한 김기설씨의 것으로 보이는데다 유서 필적과 일치해 강씨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를 반박하는 논리 대신 추측과 막말을 앞세웠다. 새로운 무죄 증거를 강씨나 제3자가 대신 작성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폈고, 김씨 유족의 증언도 보상금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함부로 매도했다. 국가기관인 과거사 조사기구의 조사권한을 문제 삼으면서 “수사 경험이 있느냐” “저의가 의심스럽다” “검찰 흠집내기” 따위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싸움판의 악다구니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억지다. 그러면서 주변의 진술이나 새 증거를 통해 이미 허위로 판명된 김형영씨의 1991년 감정 결과에 대해선 “당시 문서감정의 최고 권위자”라며 아무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법적 쟁점에 대해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분명히 드러난 제 잘못은 한사코 부인하는 꼴이니 비겁하기 짝이 없다.
유서대필 사건은 노태우 정권이 자신들에 반대하던 학생·사회운동 세력을 ‘목적을 위해 생명까지 수단으로 삼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공안 탄압의 빌미로 삼았던 사건이다. 정권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던 만큼, 강압과 거짓으로 짜맞춘 것 아니냐는 논란이 그때부터 있었다. 법원의 재심 결정은 그런 의심을 확인해준 것이다. 강씨와 주변 사람들이 당시 국가 폭력으로 다친 상처는 무죄 판결로도 다 치유될 수 없겠지만, 재심을 통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최소한의 조처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과거의 뻔한 잘못을 아니라고 우기는 일을 멈춰야 한다. 억지로 사실을 뒤틀려고 한다면 법적 안정성은커녕 불신만 더 키우게 된다. 대법원도 검찰의 항고를 기각해 잘못을 신속히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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