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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날림 청문회’와 민주당의 책임 |
엊그제 국회에서 열린 이한구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시간은 고작 2시간50분이었다. 이 후보자도 다른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의혹투성이였다. 17차례에 걸친 부동산 매매, 교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임대업, 징병검사 이후 10년 만의 소집면제 혜택 등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는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곧바로 산회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표결을 둘러싼 여야 대치의 틈바구니 속에서 ‘날림’으로 끝났고, 그는 어부지리로 중앙선관위원에 선출됐다.
이 선관위원에 대한 인사 검증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 문제였다. 그는 한나라당 내 의원 연구모임인 ‘사단법인 국민통합포럼’의 이사장을 1년 넘게 지냈다. 이 단체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명백한 한나라당의 외곽단체였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선관위원으로서는 치명적인 흠이 아닐 수 없는 경력이다. 선거관리를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국회는 이 대목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따져야 했다.
게다가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위증’까지 했다. “한나라당 의원 연구모임인 국민통합포럼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관계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런 거짓 증언은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안상수 대표가 민주당 김유정 의원 쪽에 전화를 걸어 관련 사실을 인정하고 양해를 부탁하면서 곧바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한마디로 국회를 깔보고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인사청문회특위는 이 후보자가 국민통합포럼에 대한 소명자료를 내는 조건으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국회가 스스로 자존심을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청문회가 날림으로 된 데는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애초부터 청문회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은 민주당 지도부는 심지어 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한 일부 의원을 말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자리가 무보수 비상임 위원직인데다, 국정감사와 재보궐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고려해 그냥 눈감아줘도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경중이 있을 수 없다. 세간의 관심이 별로 없는 인사청문회는 대충 넘어가겠다는 태도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런 일관성 없는 태도 때문에 민주당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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