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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자회견 질문까지 ‘원천봉쇄’하는 청와대 |
현 정권의 ‘원천봉쇄’ 선호는 집회나 시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듯싶다.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까지 원천봉쇄가 난무하니 말이다. 청와대는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들에게 최근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를 설명하기 위한 회견의 취지를 흐릴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국민들은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구상과 계획을 들을 기회를 원천봉쇄당한채 G20 정상회의 유치에 대한 자화자찬만을 실컷 들어야 했다.
원래 홍보를 뜻하는 영어 피아르(PR)라는 게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청와대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의 장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역력하다. 게다가 이날 기자회견의 문답 내용을 보면 청와대가 세종시 질문을 빼달라고 요청한 이유도 설득력을 잃는다. 친서민 정책, 선거제도나 행정구역 개편 등 G20 정상회의 유치와 관련 없는 국내 현안들도 질의응답 속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는 대답하기 껄끄러운 문제는 건너뛰고,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태도를 유감없이 드러낸 셈이다.
청와대도 잘못이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요청을 받아들인 언론의 책임은 더 크다. 국민이 궁금히 여기는 것을 물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 한겨레 역시 이런 잘못에 일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와대의 오만방자함은 ‘언론의 봐주기’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청와대는 엠바고나 오프더레코드 요청 등을 남발해 왔다. 심지어 이동관 홍보수석은 대변인 시절 걸핏하면 자신의 발언을 ‘청와대 관계자’로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변인의 말을 익명 처리하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잘 알면서도 언론은 곧잘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런 관행이 쌓이다 보니 청와대가 더욱 언론을 쉽게 여기게 된 측면도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요즘 G20 정상회의 유치를 놓고 “세계 중심국가 도약” 등의 의미를 부여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런 자화자찬에 앞서 그 나라에서는 대통령 기자회견을 어떻게 하는지부터 잘 살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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