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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앙정부가 나서야 용산참사는 해결된다 |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가 추석인 지난 3일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들의 빈소에 조문하고 “용산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총리는 유족들을 만나 “250일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연인으로서 무한한 애통함과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매우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참사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 고위 관계자 가운데 어느 한 사람 이곳에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 총리의 이날 행보는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정 총리의 발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적이 실망을 느끼게 된다. 특히 정부의 기존 입장을 답습해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한 대목은 몹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그는 “사안의 성격상 중앙정부가 사태 해결의 주체로 직접 나서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는 “지방정부를 비롯한 당사자들 간에 원만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해결의 주체에서 중앙정부는 빠지고 서울시와 재개발조합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인상이 역력하다.
용산사태와 관련해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중앙정부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울시와 ‘용산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 간에는 어느 정도 물밑 접촉도 있었다. 그런데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정 총리가 말한 ‘당사자 대화’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용산참사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에 비춰 봐도 중앙정부는 직접적 당사자다. 중앙정부가 빠지고 해결 방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유가족 쪽이 최근 들어 요구의 수위를 많이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사과나 희생자의 명예회복 조처 등을 서울시가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유가족 생계대책 방안으로 거론되는 임대상가 설치 문제 등도 서울시한테만 맡겨놓아서는 해결의 가닥을 잡기 어려워 보인다.
정 총리의 용산사태 해결 노력의 출발점은 중앙정부 책임론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족이나 범대위 쪽의 요즘 분위기로 볼 때 정 총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중앙정부 책임회피 논리에 얽매여 사태 해결의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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