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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가 |
청와대 행정관의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기금 강제 모금과 관련한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 ‘후안무치’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파문을 줄이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람마다 하는 말도 제각각이다. 심지어 아침에 한 말과 오후에 한 말이 영 딴판이다. ‘조삼모사’라는 말이 이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박노익 행정관 본인이 기금 출연 독려 사실을 시인했는데도 청와대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대목이다. 박 행정관은 지난 6일 “기금 출연은 방송통신위원회 근무 시절부터 계속 논의해온 문제로, 새해 들어서도 결론이 나지 않아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서 (통신사 임원들을)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박 행정관이 기금 모금을 담당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정작 본인은 ‘했다’는데 그의 상관은 ‘안 했다’고 우기는 셈이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제대로 된 정권이라면 이런 경우 우선 강도 높은 자체 진상조사부터 하는 게 순서다. 박 행정관은 물론이고 회의에 참석했던 통신사 관계자들도 불러 전모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소상히 밝히는 게 청와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 일을 하라고 청와대 안에 민정수석실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하다못해 조사를 하는 시늉마저도 하지 않는다. 박재완 수석은 “박 행정관에 대해 조처를 할 필요가 없다”고 황급히 선을 그어버렸다. 조사도 하기 전에 미리 무죄를 선언해버린 꼴이다.
청와대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250억원이란 거액이 오가는 일을 일개 행정관이 독단으로 처리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기금 액수 결정에서부터 통신사에 대한 압력,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윗선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사안의 성격상 행정관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넘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러다 보니 불똥이 윗선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모든 것을 딱 잡아떼는 뻔뻔한 자세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아무리 처지가 궁색하다고 해도 청와대는 우길 일을 우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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