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베트남 국민에 준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 보여줘야 |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0~22일 베트남을 국빈방문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김영삼(1997), 김대중(1998), 노무현(2004, 06) 전 대통령에 이은 5번째 방문이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베트남전쟁의 아픈 과거를 딛고 1992년 수교를 한 이래,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급속한 관계 발전을 이뤘다. 지난해 두 나라를 오간 사람이 50만명이나 되고, 상대국에 거주하는 양 국민이 각각 8만~9만명에 이른다. 베트남 국민 9000만명 중 60~70%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고, 4만명이 넘는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시집와 살고 있다. 양국 관계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두 나라는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할 예정이다.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의 중심국이고, 우리나라의 석유 수송로와 겹치는 3250㎞의 해안선을 지닌 전략적 요충국이며, 중국의 질주를 견제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이런 중대사를 앞두고, 우리가 베트남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베트남전쟁을 ‘세계 평화 유지에 공헌한’ 것으로 묘사하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이에 베트남 쪽이 강력히 반발하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급히 베트남으로 달려가 발등의 불은 껐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이 입은 마음의 상처까지 꺼진 것은 아닐 것이다.
팜띠엔반 주한 베트남 대사는 <연합뉴스>와 한 회견에서 “과거 한국이 전쟁에 참가해 베트남에 피해를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을 미화하는 차원에서 그런 일이 처리되면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다시 아프게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로선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내 피해는 강조하면서 남에게 준 피해엔 눈을 감는 태도론 절대 세계 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문 때, 전임 대통령들보다 더욱 진전된 자세로 우리가 베트남 국민에 가한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일본이 식민지배를 미화할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을 생각하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