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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 인도적 지원,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다 |
북쪽이 엊그제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남쪽에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처음이다. 남쪽의 추가 이산가족 상봉 요구에 이어 이런 요청이 나왔으니 양쪽의 관심사를 사실상 연계한 모양새다. 쟁점이 분명해진 만큼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정부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주목된다.
정부 입장으로 보면, 북쪽의 요청은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북핵 문제가 진전돼야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고집해 왔다. 대규모 지원에는 당국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거나, 투명성 확보 장치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의 상호주의적 연계가 필요하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리저리 얽어매어 움직일 틈을 찾기 힘들 정도다. 지원 여부와 규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인도적 지원은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이뤄지는 것이 옳다. 또 그럴 때에만 기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꾸준히 이어진 대북 인도적 지원이 남북 간 적대의 완화, 북-미 관계의 진전 등 선순환으로 이어진 것이 좋은 예다. 대북 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키면서 남쪽이 북핵 문제에서 부차적이고 수동적인 위치로 후퇴한 일도 여러 차례 있다.
주변 여건은 이미 남북관계의 진전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 대화를 진척시킨다는 방침을 이미 굳힌 듯하고, 북한과의 유대를 강화한 중국도 남북대화의 진전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도적 지원마저 주저한다면 북핵 문제의 주도적 구실은커녕 남북대화의 동력까지 잃게 된다.
대북 지원에는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과다한 쌀 재고와 쌀값 하락에 시달리는 농민들은 쌀값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여당 안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해 쌀 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마당에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국내 비축미를 무상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은 생뚱맞기 그지없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나눔쌀 쌓기’ 행사도 어색하다. 가뜩이나 북한의 내년 식량 사정이 올해보다 더 나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터다. 당장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곳은 바로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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