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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북 정상회담마저 등 떠밀려 할 참인가 |
미국 국방부의 월리스 그레그슨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을 했다”는 말을 해, 한-미 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한국·일본 순방 계획에 대해 기자들에게 배경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그레그슨 차관보가 이런 말을 한 사실이 전해지자, 청와대 쪽은 “미국 쪽의 오해”라고 즉각 부인했다. 이 소동은 백악관 쪽이 이런 발언이 나온 지 4일 만인 어제 국방부의 브리핑에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다. 먼저, 북한 문제에 대해 아주 사소한 사안이라도 물샐틈없이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는 한-미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 같은 예민한 주제가 ‘오해’의 대상이 된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는다. 오해가 사실이어도 문제는 작지 않다. 이 정부 들어 가장 강조한 것이 한-미 동맹 강화인데, 둘 사이에 판단이나 정보에서 불일치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 제안을 놓고도 “모르는 일”(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아무개가 모른다고 하면 어떤가”(이 대통령)라며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인 것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돌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소동을 통해 정부의 소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재차 부각됐다. 하지만 이는 북핵 문제의 대화 국면을 주도하는 미국·중국과 전혀 다른 상황 인식이다. 이번의 미국 쪽 발언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미국의 입장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지난 10일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것은 내가 이번 방북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느낌’이라면서 전한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미국 정부도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언제 어디서 혹은 어떤 조건 아래서도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도, ‘핵 폐기 결단을 하면’이란 전제를 단단히 붙여놓고 있다. 정부는 상황의 변화에 맞지 않는 선핵폐기론에 매달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인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대화 국면의 주역이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남에게 떠밀려 하는 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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