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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 총리가 흘린 ‘용산의 눈물’은 쇼였나? |
정운찬 국무총리가 최근 ‘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상황에 진전이 없는 현시점에서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니, 시간을 두고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총리 취임 직후 추석날(3일)을 택해, 정부 고위 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참사 현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총리가 바로 그 사람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당시, 정 총리는 유족 앞에서 “장례도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연인으로서 무한한 애통함과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라고 써 간 메모를 읽으며 눈물까지 흘렸다. 유족 면담 거절은 이로부터 닷새 뒤의 일이니, 눈물이 마르지도 않을 짧은 시간 안에 보인 변신이 놀랍기만 하다.
총리실 쪽의 설명에 따르면, 정 총리는 애초 용산 참사에 대해 온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취임 이후 관련 공무원들한테서 사건 실체와 범대위의 요구사항을 보고받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또 유족들을 제외한 범대위 등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공무원들의 보고를 받고서야 용산 참사의 책임이 철거민 쪽에 있고, 과격한 범대위가 개입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인데, 총리의 인식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들이 무슨 논리를 동원해 말을 하건, ‘재개발조합과 철거민 사이의 이익분쟁에 경찰이 무리하게 끼어들면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용산 참사의 본질엔 변함이 없다. 한마디로 정부의 책임 인정과 관여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최근, 법학교수, 변호사, 시민사회 대표, 인권운동가, 정당 대표 등으로 구성된 ‘용산국민법정’이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해 조목조목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정 총리의 인식이 일반 시민과 얼마나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아홉 달 가까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유족을 돕고 있는 범대위를 배제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강자인 재개발조합은 정부까지 나서 도우면서 약자인 유가족은 어떤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된단 말인가. 정 총리는 ‘용산 눈물’의 초심으로 돌아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총리가 들어야 할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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