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10.22 21:29 수정 : 2009.10.22 21:29

마라토너 이봉주가 그제 은퇴했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도록 꼬박 20년을 달린 끝에 41번째 완주가 된 은퇴경기를 1등으로 마쳤다.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감격해했지만, 우리 국민 역시 그에게서 감동과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이제 달리기를 마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봉주는 손기정으로부터 이어진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지켜왔다. 보스턴 마라톤 우승,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 등 빛나는 기록을 여럿 남겼다. 그보다 더 나은 기록을 지녔거나 그보다 나이 많은 마라토너가 여럿 있겠지만, 41차례 풀코스를 달려내고 네 차례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마라토너는 그 말고 없었다.

그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그런 성실과 끈기였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한눈팔지 않고 매일같이 새벽부터 달리고 또 달렸다. 평발에 짝발이라는 신체적 결함과 크고 작은 부상도 다 이겨냈다. 소속팀 해체, 기대를 걸었던 대회에서의 좌절 등 시련을 겪을 때도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달리기에 나섰다. 그가 10년 넘게 한국 마라톤을 홀로 이끌면서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늘 처음 같고 한결같았던 그런 노력 덕분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씩 쌓아 42.195㎞를 달려내는 마라톤은 바로 그의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많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용기, 좌절하지 않는 힘을 얻었다.

이봉주의 빈자리는 크다. 이봉주는 그제 은퇴경기에서 뒤쫓는 후배 선수들을 멀찍이 떨어낸 채 선두에서 혼자 결승선이 마련된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로서도 승리의 감회에 앞서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그가 2000년 세운 한국기록은 여태껏 깨어지지 않았다. 동료였던 황영조가 1996년 은퇴한 뒤엔 팽팽하게 경쟁하는 라이벌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도 없었다. 그렇게 독주했던 이봉주까지 은퇴했으니 한국 마라톤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 육상 100m 한국기록도 30년째 깨어지지 않았고, 여자 200m도 23년 만인 그제야 기록을 경신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실하게 연구하고 땀 흘리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을 다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체육인들이 그런 노력을 다할 때만 국민이 다시 감동과 힘을 얻고, 또다른 이봉주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