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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국의 눈짓 한번에 파병 카드 꺼낸 정부 |
이명박 정부가 아프간에 다시 파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아프간 재건을 위해 민간 전문요원 130명 정도를 파견해 운용할 방침이라면서, 이들을 보호할 경찰이나 병력을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로선 처음으로 군인 파병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를 받아 청와대 관계자가 어제 특전사가 아닌 일반 병력 가운데 지원을 받아 300명 정도를 보낼 것이라면서 파병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미 윤곽이 결정된 단계라며 발표가 임박했음도 예고했다.
정부가 아프간에서 완전 철군한 지 2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파병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특별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우회적인 파병 요청 외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유 장관은 국회에서 “글로벌 코리아로 가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이며, 아프간 정세의 안정은 안정적인 주한미군 주둔 여건을 조성하는 문제와도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논거도 맞지 않고,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아프간전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이라기보다 내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성격이 변했다. 한국 주둔 미군의 국외 배치 문제도 2006년 1월 한-미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할 때 이미 예고된 것이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마이클 멀린 미군 합참의장이 일부 주한미군 병력을 이라크나 아프간으로 이동배치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자마자, 유 장관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거론한 점이다. 둘이 입을 맞춰, 아프간에 파병을 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빼갈 테니 잠자코 파병해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린다.
거듭 말하지만, 전쟁으로 피폐한 아프간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력에 걸맞은 기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프간 국민과 적대 관계를 만들고, 우리 국민이 테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파병만큼은 결코 해선 안 된다. 2007년 여름 선교단체의 집단인질 사건 이후 의료·건설 부대를 전원 철수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더욱이 지금 아프간은 전 지역이 전쟁터라고 할 만큼 위험하다. 설사 민간인을 파견한다 해도, 계획은 세워 놓되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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