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진실에 눈감은 용산참사 재판 |
법원이 어제 ‘용산 참사’ 재판에서 농성자 9명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피고인들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과 이런저런 논란을 송두리째 외면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이건 재판이 아니다”라는 비명이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그동안의 공판 과정을 스스로 무시한 것이다. 지난 4월 이후 계속된 공판에선 검찰의 공소사실과 전혀 다른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핵심 쟁점인 발화 원인을 두고 검찰은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 불길이 망루 3층 바닥의 인화물질에 번져 불이 났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경찰특공대원들은 ‘불이 날 당시 화염병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농성자들이 인화물질을 뿌렸다는 검찰 발표와 달리, 경찰특공대원은 망루 3층 바닥이 꺼지면서 시너 통이 넘어진 탓이라고 증언했다. 화재 전문가들은 발화 원인이나 발화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런 증언들을 배척했다. 대신, 뚜렷한 근거도 없이 화염병 투척이 화재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공정한 판단도 아닐뿐더러,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 원칙에도 어긋난다.
과잉진압 논란에서도 재판부는 한쪽 귀만 열었다. 경찰이 아무런 협상이나 설득 절차도 없이, 위험성에 대한 사전점검조차 하지 않은 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조기 진압을 강행했다는 사실은 경찰 증언에서도 드러났다. 참사를 막으려면 아예 그런 진압을 말았어야 했다는 증언도 여럿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모른 체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검찰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재판에 승복하긴 어렵다.
재판 절차의 공정성도 의심을 받는다. 경찰의 과잉진압 및 직권남용 혐의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사기록 3000여 쪽을 공개하라는 법원 명령을 검찰이 태연히 거부하는데도, 재판부는 좀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려 들지 않았다.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를 제한하는 중대한 절차상 흠결을 방치한 셈이다. 재판부가 공판 내내 갈등 조정은커녕 스스로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법원이 일단 그런 의심을 받게 되면 사법 정의나 사법부의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어진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1심 판결을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