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02 21:40
수정 : 2009.11.02 21:40
사설
세종시 계획 변경을 둘러싼 여권 안의 논란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논란의 지형도 뚜렷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친박근혜 진영은 국민에게 이미 수차례 약속한 만큼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원안대로 할 경우 자족 기능이 부족하다면 보완하자는 논리다. 반면, 정운찬 총리를 축으로 하는 친이명박 진영은 원안대로 하면 자족도가 6~7%밖에 되지 않으므로 자족 기능을 갖춘 새로운 도시로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원안 추진론’과 정 총리의 ‘수정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친박근혜계의 이성헌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이 불투명한 과정을 통해 세종시 계획을 변경하려는 것에 항의해 당직을 사퇴했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단 한 번의 공개 토론도 하지 않고, 외부의 손에 좌우되어 당론을 바꾸려는 비민주적인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친이계의 공성진 최고위원과 차명진 의원은 국민투표로 세종시 논란을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이 정도면, 거의 분당 직전의 내홍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사태가 온 데는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계획 변경을 들고 나온 정 총리를 비롯한 수정론자의 책임이 크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그대로 시행하면 문제가 없을 것을, 자족 기능 부족 운운하며 아무런 공론 절차도 없이 수정하자고 나서니 여권 안에서조차 반발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종시 수정론은 민심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나라당이 10·28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는 데도 일조했다.
난데없는 세종시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여권이 내홍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데, 세종시 수정론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장막 뒤에 숨어 있다. 떳떳하지 못한 태도다. 지난번 기자회견 때 세종시 문제를 묻지도 못하게 하더니, 어제 정 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세종시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요한 국정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려고는 하지 않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선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 총리나 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다.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세종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는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