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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여당의 뻔뻔한 ‘언론법 기정사실화’ |
정부와 여당이 노골적으로 언론 관련법을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언론법 재논의 요구를 묵살하고, 청와대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언론법 재논의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의장도 책임질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법 기정사실화의 선봉장 구실을 자임한다. 모두 뻔뻔스럽고 오만한 태도다.
지난주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언론법 폐기 요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언론노조 등 관련 단체들은 어제 한나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법 재논의를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도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하는 등 재논의를 위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은 5일 개정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이런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다. 굳이 헌재 결정 취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법하게 처리된 언론법이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건 상식이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가 중요하다’는 정부·여당의 태도는 사회 전체의 윤리와 양심의 기반까지 허무는 것이다. 이는 단지 언론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개악된 언론법이 언론 전반과 사회에 끼칠 해악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드는 심각한 사태다.
뻔뻔스럽기로는 방통위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방통위는 그제 전체회의를 열어,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에 특혜를 몰아주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와 함께 ‘신규방송사업 정책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했다. 여당이 언론법 재논의 요구를 묵살하는 동안, 날치기 처리된 언론 관련법을 재빠르게 기정사실화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행령 내용은 거대 친정부 신문들한테 종편을 몰아주고 온갖 특혜를 동원해 육성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이것만 봐도 정부·여당이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언론법을 처리했고 헌재 결정까지 무시하는지 넉넉히 알 수 있다.
정부·여당은 조금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친정부 신문들에 종편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지상파 방송 통제를 좀더 강화함으로써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이런 식의 언론 통제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시대는 권위주의 정권과 함께 종말을 고한 지 오래다. 언론법을 다시 논의하는 것이 모두의 불행을 막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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