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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밀어붙일 일 아니다 |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그제 복수노조의 교섭 창구 단일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노사정 6자회담에서 합의가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법 개정 없이 현행법 취지에 따라 단일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논의가 진행되는 중에 노동 장관이 이런 식의 압박성 발언을 하는 것은 정부의 협상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원만한 합의를 바란다면 이런 태도는 버려야 마땅하다.
발언 내용도 문제가 있다. 복수노조의 교섭 창구 단일화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자칫 복수노조 허용 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 복수노조 허용이란 한 사업장에 가입 대상자가 동질적인 노조를 여럿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념이나 노선에 따라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고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본래 취지다. 아울러 노조 설립의 자유는 교섭권 보장과 떼어놓을 수 없다. 교섭권이 없는 노조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수노조의 교섭 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기도 하고, 법률로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기도 한다. 단일화 방식도 투표로 대표할 노조를 뽑는 방식과 각 노조의 조합원 수에 비례해 대표를 구성하는 방식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방안들이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하지만 원칙은 분명하다. 노사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노조 난립에 따른 혼란을 피한다는 이유만으로 소규모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건 곤란하다. 단체교섭권이 없으면, 교섭 결렬 뒤 취할 수 있는 쟁의행위인 파업권도 자동으로 제약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복수노조를 허용하더라도 노동3권 가운데 두 가지 권리를 박탈하는 꼴이 된다. 결사의 자유만 있는 노조는 친목단체나 다름없다. 복수노조 허용의 취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 단체는 자율 교섭을 허용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과장된 얘기다. 조직 통합으로 복수노조 체제가 된 건강보험공단 사례 등을 보면, 자율적 교섭을 허용해도 운영의 묘만 살린다면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관건은 복수노조 허용 취지와 노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노사정 회담은 이런 원칙에 입각해 건설적인 해법을 찾는 자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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