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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정위, 권력과 재계 입김에서 벗어나야 |
공정거래위원회의 행보가 종잡을 수 없다. 4대강 사업 턴키공사 입찰에서 짬짜미 정황이 포착됐다고 했다가 청와대가 부인하자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하는가 하면, 액화석유가스(LPG) 담합 과징금을 1조3000억원으로 산정했다가 위원장이 나서서 금액 축소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관련 업체들을 싸고도는 듯한 모습이다. 시장경제의 파수꾼 구실을 해야 할 공정위가 권력과 재계의 입김에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4대강 사업 1차 입찰 짬짜미 의혹은 여야 양쪽에서 모두 제기되는 사안이다. 소수 대형사만 참여하는 턴키방식으로 결정될 때부터 담합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입찰 결과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예정가의 65% 안팎에서 결정되는 낙찰가가 93%대에서 결정됐다. 당연히 대형 건설사들의 나눠먹기식 담합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정호열 공정위원장이 국회에서 담합 정황이 있다고 발언한 다음날 청와대가 “와전된 것”이라고 즉각 부인한 점이다. 이어 공정위는 4대강 공사 담합 정황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의 발언이 “실사팀을 파견했다”는 등 구체적이었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또한 본뜻이 와전됐다 할지라도 청와대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 공정위 스스로 해명할 사안이다. 공정위가 청와대 압력에 굴복해 꼬리를 내렸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액화석유가스 짬짜미에 대해서도 1조3000억원의 과징금을 통보한 뒤 관련 업체들이 반발하자 그제 열린 전원회의에서 결정을 뒤로 미뤘다. 정 위원장의 처신 또한 한심하다. 그는 다음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강연에서 “엘피지 사건에 대해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예상하지만 실제 부과되는 과징금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의중인 개별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그의 말은 과징금을 경감해주기 위한 사전포석처럼 들린다.
기업들의 짬짜미는 국민의 세금과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과 다름없다. 나아가 시장경제의 질서를 흔들고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다. 4대강 사업은 22조2000억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담합을 막지 못한다면 몇조원의 세금이 그냥 날아가게 된다. 게다가 특정 고교 출신들이 공사를 독식한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공정위가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철저한 조사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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