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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방송장악 음모, 누가 주도했고 누가 가담했나 |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엊그제 법원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해임이 절차상 위법이고 해임 사유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대통령 특보를 사장으로 임명하는 데 반대한 <와이티엔> 노조의 투쟁에 정당성이 있다는 판결도 나왔다. 앞서 법원은 정 전 사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고, 그의 해임을 제청한 한국방송 이사회의 친정부 성향 이사 임명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였던 ‘방송사 사장 교체 작업’의 거의 모든 과정이 법률적으로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누가 이런 위법을 저질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들이 정권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벌어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한국방송 이사회가 친정부 성향 우세로 바뀐 데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런저런 작업이 있었다. 국세청은 정 전 사장 해임 사유를 찾겠다고 외주 제작사에까지 세무조사를 벌였고, 감사원은 이례적인 감사를 벌이더니 절차와 권한을 넘어 해임을 요구했다. 검찰은 뻔히 법률적으로 무리인데도 법원의 조정 결정 수용을 배임이라고 몰아붙여 억지 기소를 감행했다. 정 전 사장 해임 뒤에는 청와대·방통위·국가정보원·한나라당 등이 비밀리에 모여 후임 사장 인선을 논의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대부분 법적으로 무효이거나 법 규정을 어긴 것이다.
방송 장악에는 정권 실세들이 앞장을 섰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한국방송 이사장을 만나 정 전 사장 사퇴를 압박하는 등 방송사 사장 교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법에 따라 권력기관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방통위원장이 되레 정치적 독립을 훼손한 것이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대통령에게 한국방송 사장 해임 권한이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펴면서 여론몰이에 나섰고, 청와대 인사들도 한국방송의 중립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태연히 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법원은 대통령의 해임 조처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시했다.
법원 판결 뒤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 위법인들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그러잖아도 법률적으로 잘못된 해임에 손을 빌려준 당시 한국방송 이사장이나 이사들은 논공행상이라도 받은 듯 좋은 자리로 옮겼다. 지금이라도 누가 잘못을 저질렀는지 분명히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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