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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용산참사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아이린 칸 사무총장이 어제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한국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모색하기 위해 방한하자마자 용산부터 달려간 것이다. 칸 사무총장의 이런 행보는, 용산참사가 한국 인권 현실을 상징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300일을 훌쩍 넘기도록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용산사태는 ‘한국의 양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와 같다. 이 사건을 외면한 채 한국에서 양심과 인권을 논할 수 없다.
그의 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 인권단체들은 용산참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인권이 뒷걸음치고 있는 가운데 용산사태의 추이는 한국 정부의 인권 의식과 개선 의지를 재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심은 한편으로는 환영할 만하다. 각국의 인권 문제는 결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제 연대가 중요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한국 인권 문제가 국제적 관심거리가 된다는 것은 한국의 인권이 여전히 국제 수준에 못 미친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칸 사무총장의 용산 방문을 무심하게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용산참사와 그 이후 정부의 대응은 문명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이다. 중무장한 경찰들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민간인 5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참사가 벌어진 지 300일이 지나도록 유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을 비롯한 철거민들은 생계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게다가 법원은 검찰이 수사기록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달 28일 용산 농성자 9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참사의 책임을 전적으로 철거민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뿐 아니다.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 관련 수배자 3명은 지금도 명동성당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는 이런 식으로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나서는 길밖에 없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가족 생계 대책은 중앙정부가 의지를 보일 때만 마련될 수 있다. 서울시 차원에서 해결할 시점은 지났다. 정부는 하루속히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와 함께 점점 악화하고 있는 인권 상황 전반을 겸허히 돌아보고 상황을 개선할 의지를 보여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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