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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전면 재논의해야 |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부가 지난주말 복수노조 허용을 2년 반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내년 7월부터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어렵사리 이뤄진 합의지만, 이 합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협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민주노총이 강하게 반발하고 야당들도 이 안에 반대하고 있는 까닭이다. 합의 내용도 보편적인 원칙과 기준에 한참 미달한다. 기업의 이익만 고려한 편향된 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민주노총과 야당의 의견을 반영한 안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3자합의는 노동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다. 논의에 참여한 한국노총은 노동자 절반의 대표일 뿐이다. 게다가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이번 합의에 반발하는 걸 생각하면, 합의 결과는 노동계 대부분의 의견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하겠다. 몇몇 노조 간부만 설득해 노동정책을 밀어붙이던 독재정권 때나 용납되던 비민주적인 방식이다. 이것만으로도, 국회법 개정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야당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 안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합의 내용도 바람직한 노사관계 정립과는 거리가 먼 것들로 채워졌다. 노조 설립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노동 기본권임에도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유보됐다. 경제적으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의 여건이 아직도 이런 권리를 허용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단 말인가. 복수노조 유예는 어떤 핑계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내년 7월부터 금지하기로 한 것도 노사 자율주의라는 보편적 원칙에 어긋난다. 전임자 임금을 금지하는 대신 노무관리 성격의 활동을 보장하는 ‘타임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는 기존 법률에도 근거가 있는 제도다. 노동자 쪽에서 보면 내년부터 시행될 현행법 규정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 3자합의가 그대로 관철되면, 민주적 노사정 협의의 원칙이 무너질 뿐 아니라 재정 형편이 어려운 대다수 노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눈엣가시인 노조 세력은 배제한 채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노조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노사관계 선진화가 아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이 사안을 전면 재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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