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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회장 사면론,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다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체육계와 경제단체 대표, 강원도 출신 국회의원 등이 잇따라 이 전 회장 조기 사면론을 제기한 데 이어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도 어제 “국익을 위해 나쁘지 않다”며 거들고 나섰다. 그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은 지난 8월14일이었다. 확정판결 뒤 넉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사면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사면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다. 이 전 회장이 사면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을 되찾아 올림픽 유치 활동을 돕는 게 나라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그럴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계 인사 사면 때마다 되풀이되는 ‘국익 논리’는 너무 상투적이다.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원칙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국익은 없다. 올림픽 유치도 중요하지만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면권이 남용된다면 이 정부가 앞세우는 법치는 어떻게 될까.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법을 지키려 할까.
이 전 회장이 올림픽 유치 활동에 나선다 해도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회장은 이미 두 차례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뛴 바 있다. 이제 유죄가 확정되고 다시 국제무대에 설 때 국제 스포츠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오히려 올림픽 유치를 위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지 않는 한국을 곱지 않게 볼 가능성이 크다.
이 전 회장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수사 때부터 선고에 이르기까지 부실 수사에 가벼운 처벌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그런데 그마저 불과 4개월 만에 지워버리려 한다면 최소한의 사법 정의마저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도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부 고위층 인사들이 앞장서 사면론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다.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규정 이상으로 가혹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재벌 총수에게는 한량없이 너그러운 관용을 베풀자고 하는 게 과연 법치주의일까. 결정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한 ‘법과 원칙’을 상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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