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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고 책임까지 떠넘기다니 |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기 위해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제 공개된 철도공사 인사노무실의 ‘전국 노경담당팀장회의 자료’를 보면, 공사 쪽은 지난 10월 초부터 노조의 산발적인 투쟁보다는 파업을 유도하려고 준비했음이 잘 나타난다. 이 문건은, 요즘 공공기관들이 노조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단체협약 해지’를 구체적인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후 상황이 문건의 제안대로 진행됐음은 물론이다. 이 자료는 지금 공공기관 노사분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문건이 공개되자 철도공사는 기밀 자료가 아닐뿐더러 단순히 노조의 파업에 대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문건 표지에는 ‘대내외 유출 금지’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또 문건은 연말까지 산발 투쟁이 이어지는 것(예상1)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예상2)을 제시한 뒤 “예상1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단협 해지’로 압박 필요”라고 적고 있다.
사쪽은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고 싶어 했음이 명백하다. 현실적으로 노조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파업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이전의 교섭 상황을 보면 사쪽은 파업 외 다른 선택의 여지를 모두 봉쇄한 상태였다. 공사는 이렇게 노조를 파업으로 몰아가 놓고도 책임을 전적으로 노조에 떠넘기고 있다. 절차상 적법한 파업이었음에도 그제부터 파업 참가자 500여명에 대한 대규모 징계를 시작했다. 노조가 강경 대응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상황을 몰아간 뒤 꼬투리를 잡아 노조를 몰아치는 양상이다. 노사 타협이나 상생엔 아예 관심도 없는 태도다.
비단 철도공사만 이런 식이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노동연구원은 노조가 파업을 철회했음에도 직장폐쇄를 풀지 않는 등 많은 공공기관이 ‘노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정부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공공기관의 노사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친노동 정책을 펴길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 군사정권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노조를 적으로 돌려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뭔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하다못해 실용적으로라도 노동문제에 접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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